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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속과 전통 의례의 모든 것: 굿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 무속과 전통 의례: 풍어굿 – 바다의 복과 안전을 기원하는 용왕신 의례

by news7809 2025. 7. 21.

풍어굿 – 바다의 복과 안전을 기원하는 용왕신 의례

 

풍어굿은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시작하기 전,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며 용왕신에게 정성을 올리는 한국 무속 전통 의례 중 하나입니다. 어민 공동체의 신앙과 생계가 담긴 굿으로, 지금도 남해·동해 연안에서 계절마다 이어지고 있으며 바다와 인간을 잇는 의례입니다.

 

바다를 향한 기도, 파도를 닮은 굿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이다.
그리고 그 바다는 단지 자연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사람들의 생계와 생존을 책임져온 삶의 터전이었다.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어민들은 늘 자연의 힘 앞에 겸손해야 했고,
그 경외심과 생존의 불안은 종종 신앙이라는 이름의 의례로 표현되었다.

그 중의 가장 대표적인 무속 의례가 바로 풍어굿이다.
풍어굿은 바다에 나가기 전,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기를 바라며
바다를 지배하는 신, 용왕신(龍王神)에게 제사를 지내고 굿을 올리는 것이다.
동해·남해·제주 등 전국 해안 지역에서 전승되는 이 의례는,
단순히 고기를 많이 잡기 위한 비는 행위가 아니다.
그 속에는 사람과 바다, 인간과 자연, 공동체와 신이 연결되어 있는 한국 무속 전통 의례의 핵심 구조가 숨겨져 있다.

이 글에서는 풍어굿이 지닌 의미, 용왕신의 정체, 지역별 의례 구조,
그리고 현대적 가치까지 하나씩 자세히 살펴본다.

 

 

풍어굿이란 무엇인가: 바다 앞에서 올리는 기원

풍어굿은 바다에 나가기 전,
또는 어업 시즌이 시작되기 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용왕신에게 풍어와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의례다.
주로 음력 정월대보름, 초하루, 유월 초하루, 칠월칠석, 추석 전후에 진행된다.

이 굿은 마을 단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한 항구를 중심으로 여러 어민 단체가 연합해 크게 치르기도 한다.
일반적인 굿과 달리, 해변에서 진행되거나 배 위에서 행해지는 경우도 많아
의례의 장소 자체가 매우 상징적이다.

용왕신에게 바치는 의례

풍어굿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신격은 용왕신이다.
용왕신은 바다의 수호신이자 풍요의 신으로 여겨지며,
일부 지역에서는 바다의 조상신 또는 토속신과 결합하어 더 복합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용왕신의 신격과 상징 구조

용왕신은 누구인가?

용왕신은 전통적으로 바다를 다스리는 신이자
수중 세계의 지배자로 여겨진다.
이 신은 대부분 남성적 권위를 상징하지만,
경우에 따라 용왕부인, 수문장신, 바다의 조상신 등으로 분화되기도 한다.

용왕신의 신격 특징

  • 수호자: 배와 어부의 안전을 지키는 존재
  • 재물신: 풍어와 복을 불러오는 상징
  • 자연신: 바람, 파도, 기후 등을 관장
  • 시험자: 진정성을 시험하며 성의 없는 제물엔 반응하지 않는 존재

풍어굿의 절차와 구성 방식

풍어굿의 절차는 정화 → 초혼 → 축원 → 제물 봉헌 → 송신 → 퇴진의 순서로 구성된다.
각 단계는 바다와 사람의 관계를 맺고 풀어가는 상징으로 해석된다.

의례의 기본 구조

  1. 터 닦기: 굿터를 정화하고 바다 방향으로 공간을 설정
  2. 초혼 의식: 용왕신과 관련 신령을 부르는 주문과 춤
  3. 용왕맞이: 제물과 함께 용왕신을 모심
  4. 풍어 축원: 무당이 굿판에서 직접 어민들의 운을 점치고 복을 기원
  5. 희생과 봉헌: 생선, 술, 쌀 등 다양한 제물을 바침
  6. 보내기: 종이나 천으로 만든 배에 혼을 실어 바다에 띄우는 상징 행위

 

지역별 풍어굿의 차이

제주도

  • 해녀 공동체 중심의 굿
  • 용왕신 외에 해신, 여신 등 여성적 신격이 강조됨
  • 굿 장소는 주로 바당당(해녀 굿당)

동해안 지역

  • 남성 어부 중심의 굿 구조
  • 파도의 방향과 수심 등을 굿에서 점치는 특징
  • 용왕의 수중 궁전을 상징적으로 그리는 경우 있음

남해안 지역

  • 공동체 중심이 강하며, 마을 풍어굿으로 진행
  • 일반 무당 외에 토박이 무속인(본향당 무당)이 주관
  • 용왕상과 용신고사가 결합된 복합 굿 형태

 

풍어굿의 현대적 의미

오늘날 풍어굿은 어민의 생존 기원이라는 본래 목적 외에도
지역 문화유산, 관광 콘텐츠, 지역 축제로 확장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에서 공식 예산을 지원하며 매년 정례적으로 굿을 열기도 한다.

무속에서 공동체 예술로

굿은 이제 더 이상 ‘믿는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다.
전통 예술, 음악, 춤, 제의 구조를 갖춘 종합 문화 콘텐츠로 인식되며,
관람형 굿, 체험형 굿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굿의 본질은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신에게 길을 묻는 행위로 남아 있다.
풍어굿은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자연과 연결된 의례로, 지금도 많은 지역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바다와 인간을 잇는, 한국 무속 전통 의례의 현장

굿은 살아 있는 언어, 풍어굿은 그 바다의 말이다

굿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다.
그것은 말로 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몸짓과 소리, 기운과 제물로 표현하는 살아 있는 언어다.
풍어굿에서 어민은 말 대신 풍어를 기원하는 진심을 북소리로, 절로, 떨리는 손끝으로 보여준다.
무당은 그 마음을 신에게 통역하고, 바다는 그 뜻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풍어굿은 그런 점에서 말해지지 않은 마음을 이어주는 언어적 의례이다.
조용한 어촌 마을의 바닷바람, 낡은 고무장화 위로 부딪히는 물살,

그 안에서 굿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존중하며 나누는 인사다.

그 굿이 계속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전통 보존 때문이 아니다.
그 안에는 여전히 우리가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남아 있고, 그 마음을 이어주는 굿이라는 언어가 사라지면,

사람과 자연의 대화도 끊기기 때문이다. 풍어굿은 단순한 어민들의 전통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 신과 공동체가 만나는 하나의 문화적 교차점이며 한국 무속 전통 의례가 지닌 현실성과 정서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치다. 고기를 많이 잡게 해 달라는 바람 뒤에는 바다의 분노를 잠재우고, 안전하게 돌아오길 바라는 기원이 숨어 있다.
굿은 그 마음을 언어로, 행위로, 소리로 표현하는 방법이며 풍어굿은 그중에서도 가장 절실하고 실용적인 의례이다. 오늘날에도 풍어굿은 여전히 유효하다.
신을 믿지 않아도, 굿을 잘 몰라도, 우리가 바다 앞에서 고요하게 손을 모을 수 있는 이유,

그것이 바로 한국 무속 전통 의례가 우리 안에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